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레오니트 브레즈네프 (문단 편집) ==== 의욕적인 군비확장 ==== [[파일:ShFR3.png]] 그림에서 보듯이 브레즈네프 집권 말기인 1970년대 후반에는 소련의 국방비가 오히려 미국을 앞섰다. 흐루쇼프는 [[벼랑 끝 전술]]로 [[쿠바 미사일 위기]]를 일으켜서 소련과 전 세계를 위기로 몰아 넣었지만, 신중한 성격의 브레즈네프는 이와 반대로 나갔다. 아무래도 소련은 국력이 미국보다 뒤쳐진다는 것을 정확히 인식하여 미국과의 직접적인 대립은 피해가면서도, 조용하고 착실하게 소련의 군비를 확장했다. 그리하여 소련은 흐루쇼프 시절에 미국에 비해 열세이던 핵탄두 수가 브레즈네프 시절부터 역전했고, 1만기가 넘는 탄두에 수천 기의 소련 [[ICBM]],[[SLBM]]이 미국 및 서방의 도시들을 겨누게 되었다. 소련의 ICBM들은 1970년대가 들어 더욱 정밀해졌고 [[델타급 잠수함]]들은 나토의 대잠망을 돌파하지 않고도 소련 연안에서 미국 본토를 타격할 수 있게 되어서 미국과 확실히 공멸할 수 있는 수준의 핵전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여기에 미국의 최신예 무기에 버금가는 소련제 재래식 무기들도 속속 개발되어, 소련군의 전력은 그의 치세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소련 해군]]이 세계 2위 대양해군으로 부상하게 된 것도 브레즈네프 정권 시절이었다. 브레즈네프 시기 개발된 재래식 무기체계 몇 가지를 살펴보자면... [[파일:attachment/제4차 중동전쟁/sa-6.jpg]] [[제4차 중동전쟁]] 당시 서방세계에 충격과 공포를 안겨준 [[2K12 쿠프]] 지대공 미사일. 당시 미국제 전투기의 [[RWR]]에 전혀 잡히지 않는 레이더파를 가지고 있었기에 미공군에게도 공포의 대상이었다. [[파일:MiG-25.jpg]] 서방권에서 '''냉전의 상징'''으로 알려진 [[MiG-25]] 전투기. [[파일:external/img2.utuku.china.com/00b061e1-69e4-4d02-b127-b06552e67207.jpg]] 서방세계에서 경계하던 소련의 신형 [[T-72]] 전차. 1973년 실전배치 이후 단 몇 년만에 자그마치 수천대가 양산되었다. [[파일:attachment/Mi-24A.jpg]] [[Mi-24]] 공격헬기. 미국과 우주에서 돈을 뿌리며 [[우주 경쟁]]을 펼치던 우주개발에서도 브레즈네프의 성격이 드러나는데, [[아폴로 11호]]로 달에 미국이 먼저 착륙하자, 브레즈네프는 돈지랄로 간주되던 달착륙 계획을 미련없이 취소하고, 조용하지만 좀더 실용적이고 경제적인 우주개발에 방향을 틀게 된다. 그래서 소련은 달 탐험 대신 [[우주정거장]] 건설로 방향을 틀어 1971년에 [[살류트]] 우주정거장을 발사하였고, 우주정거장 운용의 노하우를 축적하여 현재는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상을 가지고 있다. [[ISS]]의 운용 노하우도 상당부분 살류트-[[미르 우주정거장|미르]]를 운용해 본 경험이 있던 러시아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이런 면을 보면 브레즈네프는 충동적이고 요란하던 흐루쇼프와는 달리 조용하면서도 신중하고 집요하게 목표를 추진하는 스타일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이러한 군비 확장은 소련 경제에 있어서 별다른 도움은 되지 못했다. 두 차례의 [[오일 쇼크]]로 거액의 돈을 벌게 된 소련이었지만 브레즈네프는 이러한 막대한 수익의 상당수를 소련의 경제와 인민들의 생활과는 별 관계가 없는 군사력에 집중 투자해버리는 바람에 군대는 비대해졌고 결과적으로 경제를 좀먹게 되었다. 특히 소비재 그리고 컴퓨터와 같은 첨단기술에 대한 투자도 지지부진해졌다.[* 비슷한 시기 북한도 [[김일성]]이 의욕적인 군비 확장정책을 벌이면서 전체 예산의 자그마치 30%를 국방비에 집중 투자했다. 결과적으로 파탄 지경은 아니던 북한 경제는 한국에게 추월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결과적으로 [[고난의 행군]]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한편 브레즈네프의 군비 증강은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에게 있어서 깊은 위기로 다가오기도 하였다. 이때 소련이 SS-20 세이버 [[중거리 탄도 미사일]]과 [[Tu-22M]] 중거리 폭격기를[* 사실 공중급유 프로판이 있어서 대륙간 폭격이 가능했지만 미국과의 협상으로 인해 제거된다.] 1970년대 부터 실전배치에 들어갔다. 문제는 해당 시스템들이 ICBM과 SLBM, 장거리 폭격기를 규제하는 [[전략무기제한협정]]의 제한을 전혀 받지 않아서 안보 위기로 이어졌다.(일명 유로미사일 위기(Euromissile Crisis)) 서유럽 국가들은 자국 이기주의로 비춰질 수도 있는 미국의 핵협상을 비판하기에 이르렀고 결국 이후 미국은 [[로널드 레이건]] 행정부 시기에 서유럽 국가들의 안보적 경각심을 해소하기 위해 서독과 이탈리아에 [[MGM-31 퍼싱|퍼싱 II 탄도미사일]]이 배치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러한 군비 확장의 책임을 브레즈네프에게만 물을 수는 없다. 브레즈네프 시기 군비확장의 가장 큰 이유는 흐루쇼프의 [[쿠바 미사일 위기]]로 인해 군사력에 대한 엄청난 트라우마가 정치국을 휩쓴 것에서 비롯한 것이기 때문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